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8 서울 올림픽 (문단 편집) ==== [[제3세계]]와 외교를 통한 저변 확대 ==== 미국과 같은 서방 세력과의 교류와 협력이 돈독해지고 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것과 그간 '적성국가'로 여겨지던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 및 중공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들과의 수교 뿐만 아니라 반대로 중동 지역의 경우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중동 건설에 관한 대대적인 붐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1980년대 초에는 이미 우리나라의 다수의 유수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여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현지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를 대개 부지런한 국민성을 거론시킬 정도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거기에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은 서울 올림픽 유치에 이바지하면서 성공을 도와주었던 국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는 즉 당시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 및 강대국들 못지 않게 새롭게 [[중동]] 및 [[아프리카]] 등의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에 저변활동을 늘리는 것과 같은 상당한 공을 들이게된다. 물론 박정희 정부 때에도 체제경쟁과 석유수급을 이유로 [[제3세계]] 국가들에게 손을 내밀었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한 만큼 더욱 공을 들이게 된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제5공화국(드라마)|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등장했던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국내 정세 및 현안이 너무 복잡했었던 까닭에 당시 전두환은 일정에 잡힌 제3세계 관련 순방외교를 취소하려고 했으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노신영이 이들 제3세계 국가 덕분에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한 것을 생각하여 볼 때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전두환을 설득해 결국 순방외교를 이어가게 한다. 심지어 북한과 수교국이었던 [[버마]]([[미얀마]]) 순방 도중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라는 초유의 참사가 있기도 했지만 순방은 계속되었다.[* 물론 이는 전두환이 국내를 비롯해 미국 등의 강대국들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관한 지지기반을 잘 다지지 못해, 안 좋은 국내 여론을 잠식시키고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를 통해 이를 만회해 보려는 속셈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향상과 더불어 외교노선 다변화에도 도움이 되는 등의 성공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 당시 참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저가로 전세기를 띄워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은 서울 올림픽 당시에 지켜졌다. 이전까지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한국 대통령이 현지 국가에 공식 방문한 사례는 [[전두환]]이 최초였다. 전두환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과의 만남은 2006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는 아프리카 3개국 ([[이집트]], [[나이지리아]], [[알제리]])의 국가 정상들이 종종 방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뿐, 현지 방문은 없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국력 신장과 더불어서 이후 동남아시아권 국가나 서남아시아권의 국가들과도 교류가 이어지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외교력은 한층 더 성장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